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문화관광/체육

도솔산보루

  • 종 목 : 문화재자료 제3호
  • 분류|수량 : 건조물 | 1동
  • 시대|인물 : 조선후기 | 권득기, 권시
  • 소 재 지 : 서구 남선로 8
  • 지정일자 : 1989. 03. 18.

도솔산兜率山 보루堡壘는 가수원에서 유성 방향으로 흐르는 갑천의 동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얕은 산지에 있다. 이 산자락 북쪽 끝 봉우리에는 월평산성月坪山城이 자리 잡고 있다. 월평산성을 필두로 마봉재 보루와 여기 도솔산 보루가 차례로 약 1~2㎞의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 고대 대전 분지에서 이곳이 차지하는 전략적 혹은 전술적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보루가 설치된 곳은 표고 207m의 산봉우리 정상부이어서 갑천 서쪽의 여러 교통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루가 위치한 산지는 서쪽으로 계룡산지와 약 5㎞, 그리고 동쪽으로는 계족산·식장산 산지와 약 8㎞ 떨어져 있어 군사적 요충이라 할 수 있다.

보루의 모양은 직경 약 18m의 원형으로서, 둘레 길이 55m, 그리고 전체 면적 254㎡가량 된다. 보루의 가장자리는 대략 30~40㎝ 크기의 석재를 쌓아 외벽을 만들었는데, 남아 있는 모양으로 보면 당초 지형에 따라 몇 개의 단으로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넓적한 돌을 6단 가량 쌓은 부분도 관찰된다.

유적 주변에서 백제 웅진·사비기의 기와편이 관찰되어 축조 주체와 시기 등을 알 수 있다. 도솔산 보루는 월평산성 및 마봉재 보루와 함께 웅진·사비기 백제의 중요한 군사시설의 하나로 보인다.

대전 지역은 475년 고구려에 의해 한성漢城이 함락된 이후 황망히 웅진熊津 으로 천도한 이후 한때 고구려의 치하에 들었다. 보루가 위치한 갑천 동안의 월평산성 산지는 그 무렵 백제와 고구려 군 모두의 최전선이었다. 당시의 사정은 월평산성 아래층에서 출토한 고구려 토기 등이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 이후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다시 대전 지역을 차지한 것이 바로 웅진기 475~538년이며, 도솔산 보루는 바로 그 무렵 이후 만들어진 백제의 최전방 보루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일진일퇴의 전선에 월평산성을 축조하게 된 것은 이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회복한 사비기 538~660년의 백제였다. 그 시기는 대략 6세기 어느 무렵으로 비정된다. 도솔산 보루는 월평산성이 북단에 치우쳐 있는 전술적인 단점을 보완 하면서 동시에 대전 분지 남단의 동서 교통로를 감제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